부활절 |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절기
예수님이 무교절 후 일요일에 부활하신 이유가 있다?
부활절(復活節, Resurrection Day)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7개 절기 중 세 번째 절기로, 유월절과 무교절 이후에 거행되는 절기다. 구약시대 명칭은 ‘초실절(初實節, Feast of Firstfruits)’이라고 한다. 신약시대에 이르러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운명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을 기념하는 절기라는 의미로 ‘부활절’이라 부르게 되었다.
부활절 날짜
성경에 명시된 부활절 날짜는 ‘무교절 후 첫 안식일 이튿날(다음 날)’이다. 이것은 성력상의 날짜로, 그레고리력(태양력)으로는 3~4월경이다.
정월 십사 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이달 십오 일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 첫 이삭 한 단을 …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레위기 23:5~11)
하나님께서는 첫 이삭(첫 열매, 초실) 한 단을 안식일 이튿날에 바치라고 하셨다. ‘안식일 이튿날’은 요일상으로 일요일에 해당하는데, 절기를 순서대로 열거하는 과정에서 유월절, 무교절 다음에 언급한 점을 감안할 때 초실절은 무교절 후 첫 안식일 다음 일요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신약시대 초대교회 사도들도 무교절 후에 오는 안식일 다음 날에 부활절을 지켰다.
우리는 무교절 후에 …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사도행전 20:6~7)
오늘날 대다수 기독교회가 지키는 부활절 날짜는 A.D.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가 벌였던 유월절 논쟁을 종식시키면서 로마 황제와 종교 지도자들이 정한 것이다.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정해진 부활절 날짜는 ‘춘분 후 만월 다음 첫 번째 일요일’이다. 그레고리력으로 3월 22일에서 4월 25일 사이인데, 이 날짜는 성경의 부활절 날짜와 기준이 다르다. 성경의 부활절은 유월절, 무교절을 기준으로 하지만, 이 날짜는 춘분과 만월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정한 부활절 날짜는 당시 유럽에 널리 퍼져있던 봄과 다산의 여신 에오스트레(Eostre)의 축제일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날짜와 함께 달걀, 토끼 등의 문화도 여기서 유입되었다. 봄의 여신 축제는 고대 바벨론의 여신 이슈타르(Ishtar) 숭배 사상에서 시작되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에서는 아스다롯(Ashtoreth)이라고 불리며 숭배되어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도 했다(사사기 2:13, 10:6, 사무엘상 12:10, 열왕기상 11:33). 영어로는 ‘이스터(Easter)’다. 오늘날 부활절을 뜻하는 ‘이스터’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부활절의 유래
부활절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했던 지도자 모세의 행적 중 홍해를 건너 육지로 올라온 날과 관련이 있다.
3,500년 전 이집트의 압제에 시달리며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은 성력 1월 14일 저녁 유월절을 지킨 후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집트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 파라오가 이스라엘 민족을 내보낸 후 마음이 돌변해 군대를 이끌고 추격해왔다. 이스라엘은 뒤에는 파라오의 군대가 추격해오고 앞에는 홍해가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에 직면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이 당시 고난을 겪었던 일은 무교절의 유래가 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무사히 홍해를 건널 수 있었다.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으로 홍해를 마른 땅같이 무사히 건너 성력 1월 22일 새벽, 육지에 상륙했다(출애굽기 14:21~31). 하나님은 이날을 초실절로 제정하셨다. 즉,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홍해에 들어간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하고, 홍해에서 상륙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한다.
구약의 초실절과 신약의 부활절
초실절과 부활절은 그 명칭이 달라진 것처럼 신약시대에 이르러 예법도 변역되었다. 단, 날짜는 동일하게 무교절 후 첫 안식일 다음 날인 것은 변함이 없다.

구약시대 초실절에는 그 명칭에 드러나 있듯이 ‘처음 초(初)’, ‘열매 실(實)’, 즉 처음으로 수확한 곡식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식을 행했다. 백성들은 무교절 후 첫 안식일 다음 날인 초실절이 다가오면 처음으로 수확한 곡식 한 단을 제사장에게 가져가 요제를 드렸다. 요제란 ‘흔들 요(搖)’, ‘제사 제(祭)’로 ‘제물을 흔들어 드리는 제사’를 뜻한다. 요제와 함께 번제, 소제, 전제도 곁들여졌다. 번제로는 1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소제에 감람유를 섞어 반죽한 밀가루, 전제에는 약 1L의 포도주를 드렸다(레위기 23:10~13).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후 햇곡식을 먹을 수 있었다(레위기 23:14).
신약시대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는 초실절에 담긴 예언을 성취하셨다. 예수님은 유월절 밤에 제자들과 마지막 성만찬을 나누신 후 잡히셔서 다음 날(무교절)에 십자가에 운명하셨다. 그리고 안식일 다음 날(일요일) 부활하셨다.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으로 유월절을 잡수시게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
(마가복음 14:12~72)
새벽(유월절 다음 날인 무교절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로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니 …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 예수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마가복음 15:1~37)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일요일)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마가복음 16:9)

예수님은 왜 유월절에 잡히셔서 무교절에 운명하신 후 안식일 다음 날(일요일)에 부활하셨을까? 이는 예정된 수순대로, 성경의 예언대로 이루신 것이었다. 예수님이 안식 후 첫날에 부활하신 것은 구약시대 초실절이 ‘무교절 후 안식일 다음 날’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이미 제자들에게 십자가에 운명하실 것과 다시 살아나실 것을 예언하셨다(누가복음 9:22, 마태복음 12:40). 예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 최초로 살아나신 역사는 초실절의 예언을 성취하신 것으로,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린도전서 15:20)
이에 따라 신약시대에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초실)로서, 죽은 자 가운데 처음으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한다. 초실절이었던 절기의 명칭을 부활절이라 칭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신약시대 부활절 예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성경에서는 삶은 달걀로 부활절을 지킨 기록이 없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부활절에 떡을 나누었다. 이는 예수님께서 친히 본보이신 가르침이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길에서 엠마오로 향하는 제자들과 마주쳤다. 그러나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자 예수님께서는 떡을 떼어주심으로 그들의 영안을 열어주셨다.
안식 후 첫날 … 그날에 저희 중 둘이 … 엠마오라 하는 촌으로 가면서 …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누가복음 24:1~31)
이러한 예수님의 본과 가르침에 따라 초대교회 사도들은 무교절 후에 오는 안식일 다음 날에 영적 눈을 밝혀주는 떡을 나누며 부활절을 지켰다.
우리는 무교절 후에 …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사도행전 20:6~7)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으로 고통받는 인류에게 부활과 영생에 대한 소망을 심어주셨다(베드로전서 1:3). 우리와 동일한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이 부활하신 일은 인류 역시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을 보증하는 것이다(고린도전서 15:12~1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요한복음 11:25~26)
[관련 영상] 부활절과 예언 성취
[참고 자료]
1. 하나님의 교회 공식 사이트 《하나님의 교회 지식사전》
2. 《하나님의 비밀과 생명수의 샘》, 안상홍, 멜기세덱출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