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의 비유

무화과나무의 비유 속에는 예수님의 재림 시기에 대한 힌트가 담겨 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Parable of the Fig Tree)는 예수님의 비유 중 하나로, 누가복음 13장에 기록되어 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에 대해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마지막 때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시기에 대한 단서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예수님이 예루살렘 동쪽 감람산 위에 앉아 계실 때, 제자들이 은밀히 다가와 예수님의 재림 시기와 세상 끝날에 어떤 징조가 있을 것인지 질문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나타날 여러 가지 징조에 대해 설명하며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말씀하셨다(마가복음 13:28~29, 누가복음 21:29~31).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마태복음 24:3, 30~33)

성경에서 ‘인자’는 예수님을,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은 육체로 오실 것을 의미한다. 즉, 예수님이 육체로 다시 오시는 시기와 징조를 알려면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워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 예수님이 재림하는 시기가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낼 때”라고 알려주셨다.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낼 때’는 과연 언제를 가리키는 것일까.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시기와 징조를 알려면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워야 한다.

→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시는 문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구름 타고 오시는 예수님 문서를 참고하세요.

무화과나무의 비유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누가복음 13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비유를 통해 천국의 비밀과 구원의 섭리에 대해 가르치셨다. 그중 하나가 무화과나무의 비유다. 이는 비유이자 예언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이스라엘이 심판받을 것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누가복음 13:6~9)

한 사람(포도원 주인)이 무화과나무를 심고 3년 동안이나 기다렸으나 열매가 열리지 않자 과원지기에게 베어버리라고 지시한다. 그러자 과원지기는 올해만 더 지켜보자며 열심히 길러도 열매가 열리지 않으면 그때 베어버리자고 제안한다.

〈포도원 과원지기와 무화과나무(The Vine Dresser and the Fig Tree)〉, 프랑스의 화가 제임스 티소(James Tissot) 作.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무화과나무의 비유에서 무화과나무를 심고 열매를 기다린 ‘한 사람’은 예수님을 상징한다.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의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30세에 침례 받으신 후 십자가에 고난당하시며 운명하시기까지 3년 동안 이스라엘에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으나 사람들이 배척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비유한 것이다.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하신 말씀은 장차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경고다.

이어서 과원지기가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라고 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 이후에도 이스라엘을 즉시 멸망시키지 않고 기회를 주셔서 제자들을 통해 복음이 전파될 것을 의미한다.

이 예언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운명하신 후 약 40년 동안 이스라엘은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을 통해 복음을 듣고 회개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이후에 실과가 열리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신 것처럼 결국 예수님을 배척하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스라엘은 심판을 받게 되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유

무화과나무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예수님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일이다.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날은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다음 날이었다. 이 이야기는 마태복음 21장과 마가복음 11장에 기록되어 있다(마태복음 21:18~20). 다음은 마가복음에 기록된 내용이다.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마가복음 11:12~14, 20~21)
〈저주받은 무화과나무(The Accursed Fig Tree)〉, 프랑스의 화가 제임스 티소(James Tissot) 作.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일은 많은 의문을 남긴다. 무화과의 때가 아니라는 것은 무화과가 열매를 맺을 시기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열매가 달리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예수님께서는 그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뿌리까지 마르게 하셨다. 과연 예수님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이것은 무화과나무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아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이사야 5:7)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이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같이 보아 좋게 할 것이라

(예레미야 24:5)

무화과나무는 바로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오셔서 3년 동안 복음을 전파하셨지만 유대인들은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했다. 즉,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유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될 것을 실물 교훈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이스라엘의 멸망

이스라엘은 예수님의 예언대로 A.D. 70년 로마에 의해 멸망했다. 그 당시 유대에 부임한 로마 총독들의 수탈과 폭정, 제사장들의 부패 등으로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유대인들은 반감을 갖고 여기저기서 들고일어났다.

A.D. 66년,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 가이사랴(카이사레아)에서는 유대인의 시민권을 부정하는 헬라인들을 로마 정부가 두둔한 일로 유대인들이 봉기했는데, 진압 과정에서 약 2만 명이 살육당했다. 예루살렘에서는 총독 게시우스 플로루스(Gessius Florus)가 세금(속주세) 체납을 빌미로 예루살렘 성전 금고의 금화를 강탈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일은 ‘제1차 유대-로마 전쟁(제1차 유대인 반란)’의 도화선이 되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주둔한 로마 군영을 급습해 성을 장악했다. 시리아(수리아) 총독 케스티우스 갈루스(Cestius Gallus)가 예루살렘을 공략했으나 유대인들의 강력한 저항에 실패하고 퇴각했다. 이후 유대인들은 시리아군을 공격해 많은 사상자를 냈고, 유대 각 지역의 로마군 진영을 공격했다.

당시 로마 황제였던 네로(Nero)는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최고 명장이었던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 또는, 베스파시안(Vespasian)) 장군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A.D. 68년 베스파시아누스는 6만 명에 달하는 정예병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침공했다.

예루살렘성을 포위하여 대치하던 중 로마로부터 네로 황제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철군하여 로마로 돌아갔다. 그사이 예수님을 믿었던 초대교회 성도들은 약 40년 전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말씀을 떠올렸고, 서둘러 예루살렘을 떠나 요단강 동편 펠라(Pella)로 피신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

(누가복음 21:20~22)

예루살렘 교회는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신앙이 인정된 사람들에게 주어진 신적 계시에 따라 예루살렘을 떠나 요단강 건너 펠라(Pella)라는 마을로 옮겨갔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유세비우스 팜필루스, 은성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에서 철수한 지 2년 후인 A.D. 70년, 황제 자리에 오른 베스파시아누스는 그해 4월, 반란을 일으킨 유대인들을 진압하기 위해 아들 티투스(Titus)를 예루살렘으로 출정시켰다. 티투스는 잘 훈련된 로마 군단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공격했다. 로마군은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간 포위용 성벽을 쌓아 물자와 식량 등 보급로를 완전히 차단하고 무차별적인 살육과 약탈, 방화 등 총공세를 퍼부었다. 이 전쟁으로 유대인 110만 명이 사망하고 9만 7천 명이 포로로 끌려갔다.

예루살렘 공략전이 다시 시작되었다. 베스파시아누스제의 아들 티투스는 14군단을 이끌고 A.D. 70년 4월부터 9월 말까지 격심한 공격을 퍼부었다. 이리하여 신전도 성벽도 도시도 다 불타버려 다만 기왓장과 흙덩이만이 뒹굴 뿐이었다. 굶어서 쇠약해진 주민은 여자도 어린이도 철저하게 항전하다가 지옥과 같은 피의 개울 속에 다 쓰러져갔다. 포위 공격되어 전사한 자가 110만 명, 포로가 9만 7천 명이라 전해진다.

《대세계의 역사 제3권 대로마제국∙고대의 인도》, 삼성문화개발

예수님의 예언대로 복음을 배척했던 이스라엘 나라, 즉 무화과나무가 말라죽은 것이다. A.D. 1세기에 활동했던 유대인 출신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는 그의 저서 《유대 전쟁사(The Wars of the Jews)》에 예루살렘 멸망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티투스와 로마군이 포위용으로 건설한) 성벽이 완공되자 유대인들의 탈출로는 완전히 차단되었고, 도시는 처참한 기근에 휩싸였다. 집집마다 굶어 죽은 여인과 아이들이 가득했으며, 거리에는 노인들의 시신이 즐비했다. 젊은이들은 유령처럼 거리를 헤매다 쓰러져 죽어갔다. 시신의 수가 너무 많아 장사를 지낼 수도 없었고, 산 자들도 곧 자신들이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통곡조차 하지 않았다. 도시에는 죽음의 침묵만이 흘렀다.

《유대 전쟁사 제5권》,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Destruction of the Jerusalem Temple)〉, 이탈리아의 화가 프란체스코 하예즈(Francesco Hayez) 作.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이스라엘의 건국과 재림 예수님

이후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 각지로 흩어져 1900년이 넘는 세월을 유랑하며 설움 속에 살아야 했다. 그러던 19세기 후반, 반유대주의로 인한 유럽인들의 탄압이 거세지자 유대인들은 조상 대대로 살던 땅 팔레스타인으로의 이주를 장려하기 시작했다. 이어 그곳에 유대인들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민족주의 운동, 시오니즘(Zionism)을 벌였다.

1894년 프랑스에서 유대인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Alfred Dreyfus)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수감된 ‘드레퓌스 사건’은 시오니즘에 더욱 불을 지폈다. 유대인 지도자들의 노력으로 1917년 영국의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Arthur Balfour)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는 것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그런 가운데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당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 Holocaust)은 독립 국가의 필요성을 더욱 확고히 했다. 유럽 전역에서 어린이 150만 명을 포함한 6백만 명의 유대인이 목숨을 잃었다.

1947년 제2차 세계대전 후 유엔(UN, 국제연합)은 팔레스타인을 유대인 지역과 아랍인 지역으로 나누기로 결정했다. 아랍인들이 반발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무릅쓰고 독립 선언을 강행했다.

1948년 5월 14일 금요일 오후 4시, 안식일 전날 유대교 지도자들이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박물관에 모였다. 이스라엘 국가(國歌)인 ‘하티크바(소망, 희망)’가 울려 퍼진 후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David Ben-Gurion)이 건국을 알리는 독립선언문을 읽어 내려갔다.

이스라엘 땅은 유대인의 탄생지다. 여기서 최초로 국가를 만들었고 책 중의 책(성경)을 세계에 전했다. 강제 추방된 이후에도 이 땅으로 돌아와 정치적 자유의 회복을 기도했다. … 우리는 이곳에 이스라엘 국가라는 유대인 국가의 설립을 선언한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독립선언문 中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David Ben-Gurion)이 독립을 선언하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1900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 나라 없이 떠돌던 민족이 옛 고토에 국가를 세운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인류 역사상 1900년 만에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은 사례는 이스라엘이 유일하다. 역사학자들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두고 ‘20세기의 기적’, ‘유사 이래 가장 위대한 기적’이라고 평가한다.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내면”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무화과나무를 상징하는 이스라엘이 다시 소생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역사가 이루어지게 하셨을까. 이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징조를 알려주기 위함이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마태복음 24:32~33)

예수님은 무화과나무가 잎사귀를 내는 그때에 당신께서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예언하셨다. 즉 재림 예수님이 등장하는 시기는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때인 것이다. 이스라엘 나라가 재건된 1948년 인류의 구원을 위해 다시 오신 예수님은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재림 예수님 문서를 참고하세요.

[관련 영상]

[참고 자료]
1. 하나님의 교회 대표 사이트 《WATV》
2. 하나님의 교회 공식 사이트 《그리스도 안상홍님》
3. 하나님의 교회 공식 사이트 《하나님의 교회 지식사전》
4.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유세비우스 팜필루스, 은성
5. 《유대 전쟁사》,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6. 《이스라엘사》, 최창모, 미래엔
7. [책갈피 속의 오늘]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동아일보》, 2007. 5.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