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성모인가 성도인가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는 과연 숭배의 대상일까.

마리아 숭배는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마리아를 성인(聖人)으로 간주하는 가톨릭의 사상을 일컫는다. 대부분의 기독교회에서 신조로 채택하고 있는 ‘사도신경(使徒信經, The Apostles’ Creed)’에는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4세기경 로마가톨릭에서 만든 기도문으로, 마리아의 동정 잉태를 강조한 것이다. 마리아 숭배는 가톨릭의 핵심 교리다.

성경 속 마리아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

신약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이름 ‘마리아’는 본래 아람어와 히브리어로는 מִרְיָם(미리암, Miryam)이다. 모세의 누이와 동명(同名)인 셈이다. 당시 아람어를 사용했던 유대인들은 마리아를 ‘미리암’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헬라어 성경은 Μαρία(마리아, Maria), Μαριὰμ(마리암, Mariam), Μαρίαν(마리안, Marian) 등으로 기술하고 있다. 마리아는 마리암의 축약형으로, 영어식 표현인 Mary는 헬라어 ‘Μαρία’에서 유래했다.

마리아라는 이름은 초대교회 당시 상당히 흔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 외에도 막달라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셉(요세)의 모친, 글로바의 아내, 마가의 어머니, 로마 교회의 사역자 등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다수 등장한다(마태복음 27:56, 마가복음 15:40, 요한복음 19:25, 사도행전 12:12, 로마서 16:6). 그중 가톨릭에서 숭배하는 인물은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는 서기 1세기경 이스라엘 북부 지역인 갈릴리 나사렛에 살았다. 평범한 유대인 여성이었던 마리아가 성경 여러 장에 걸쳐 기록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리아에 대한 기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시점에 집중돼 있다. 다만 마리아의 동정녀 잉태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기자만 다루고 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마리아는 다윗 가문의 후손이었던 요셉과 약혼한 상태에서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듣는다. 이른바 ‘수태 고지(受胎告知, Annunciation)’다. 천사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아들을 잉태하게 될 것이라고 알린다. 마리아는 동정녀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항변한다. 천사는 그녀의 친척 엘리사벳이 늙은 나이에도 수태한 지 6개월이나 되었다며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한다. 그 아이가 바로 침례(세례) 요한이다(누가복음 1:26~38).

마태복음 기자는 마리아보다 요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요셉은 마리아의 임신 소식을 듣고 조용히 파혼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천사가 꿈에 나타나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 후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한다(마태복음 1:16~25).

특별히 마태복음 기자는 동정녀 마리아와 예수 탄생에 대해 기술하며 구약성경의 예언을 인용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탄생이 동정녀였던 마리아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언급하며 약 700년 전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상기시킨다(마태복음 1:18~23, 이사야 7:14). 이어 미가 선지자가 지목했던 베들레헴에서의 탄생 일화를 소개하며 구약 선지자의 예언이 적중했음을 독자들에게 확인시켜준다(마태복음 2:1~11, 미가 5:2).

실제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했을 때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인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가이사 아구스도, Caesar Augustus, 재위 B.C. 27년~A.D. 14년)는 인구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누가복음 2:1). 세계사는 인구조사 목적이 인두세 대상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 사건은 미가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기 위한 징조로서 하나님이 개입했음을 시사한다. 당시 요셉과 마리아는 나사렛에 살고 있었다. 요셉은 다윗 왕가의 후손으로 베들레헴 출신이었기 때문에 호적 신고를 하려면 베들레헴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베들레헴에 머물렀을 때 미가 선지자의 예언대로 그리스도가 탄생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목자들로부터 천사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마음에 담아두었다. 이후 율법에 따라 8일 만에 할례를 행하고 정결 예식을 위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서 제사를 드렸다(누가복음 2:21~24). 헤롯(Herod Ⅰ 또는 Herod the Great, 재위 B.C. 37~4년)의 영아 학살 때는 이집트로 망명했다가 헤롯이 죽은 후 돌아와 나사렛에 정착하여 살았다(마태복음 2:1~23).

누가복음 기자는 예수님이 12세 때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갔던 일을 소개하고 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루살렘에서 어린 예수님을 잃었다가 3일 만에야 다시 찾았다. 마리아가 아들을 책망했을 때 어린 예수님은 의미심장한 말로 응수했다. 자신의 특별한 정체성을 드러낸 것이다. 기자는 마리아가 그 모든 말을 마음에 새겨 두었다고 전하고 있다(누가복음 2:41~49).

이후 성경에는 마리아에 대한 기록이 드물게 나타난다. 요한복음 기자는 예수님이 갈릴리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첫 이적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 사건은 마리아가 이미 예수님의 영적 권위와 능력을 짐작하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에피소드 중 하나다. 당시 예수님은 포도주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린 마리아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내 때가 아직 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당부했다(요한복음 2:1~11).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고난받을 때 그 현장에 있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사도 요한으로 추정되는 애제자에게 어머니인 마리아를 부탁했고,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복음 19:25~27). 예수님이 승천한 후 마리아는 초대교회 성도들과 함께했다(사도행전 1:14).

전승에 따르면 마리아가 사도 요한을 따라 에베소에 거주했다는 설, 예루살렘에 머물렀다는 설, 사후 기드론 골짜기에 매장됐다는 설 등이 있다.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현재 예루살렘 올드시티(구시가지) 동쪽 기드론 골짜기에 마리아의 무덤이 있다.

마리아영면교회의 무덤과 제단.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가톨릭의 마리아론(Mariology)과 마리아 숭배

마리아 숭배는 4세기경부터 꾸준히 발전되어 왔다. 가톨릭은 마리아를 ‘거룩한 어머니’라는 의미의 ‘성모(聖母)’라 부르며 특별한 신앙의 대상으로 여긴다. 개신교는 마리아 숭배를 경계한다. 가톨릭의 마리아 숭배와 관련한 교리를 체계화한 학문인 마리아론(Mariology)을 살펴보면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우위에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가톨릭은 일요일 미사를 포함해 대축일(大祝日, Solemnity)로 정한 날을 신자로서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대축일은 가톨릭 달력에서 가장 등급이 높은 축일을 말한다. 가톨릭의 의무 축일(Holy Days of Obligation)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예수 부활 대축일(부활절)’, ‘예수 성탄 대축일(크리스마스)’과 함께 마리아와 관련해 ‘천주의 모친 마리아 대축일(1월 1일, Solemnity of Mary, Mother of God)’, ‘성모 승천 대축일(8월 15일, Assum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12월 8일, Immaculate Conce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등이 있다.

가톨릭에서 가르치는 마리아에 대한 주요 교리와 호칭은 ‘하느님의 어머니(천주의 모친)’, ‘평생 동정’, ‘원죄 없는 잉태’, ‘성모 승천(몽소승천)’ 등이다. ‘하느님의 어머니(천주의 모친)’라는 호칭은 431년 에베소(에페수스) 공의회(Council of Ephesus)에서 공식 선포되었다. 마리아를 ‘Θεοτόκος(테오토코스, 또는 데오토코스)’라고 칭했는데 이는 헬라어로 ‘신을 낳은 자’라는 뜻이다.

가톨릭에서는 테오토코스 교리에 대해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인간 그리스도의 어머니(크리스토토코스)에 불과하다는 네스토리우스(Nestorius)의 주장을 배격하고 마리아의 신적(神的) 모성을 방어하는 뜻에서 마리아를 ‘테오토코스’라 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축일은 1월 1일이다.

‘평생 동정’은 마리아가 동정녀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예수님을 낳은 후에도 평생 동정녀로 살았다는 주장이다.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선언했다.

‘원죄 없는 잉태’, 즉 ‘마리아 무죄 잉태설(무염시태, 無染始胎, Immaculate Conception)’은 마리아가 무죄하신 예수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그녀 역시 죄가 없이 태어났다는 교리다. 1476년 교황 식스투스(식스토) 4세(Sixtus IV)가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된 마리아 축일’을 인가했고, 15세기 인노켄티우스(인노첸시오) 8세(Innocentius VIII)는 마리아를 ‘원죄 없이 모태에 밴 자’라고 부르는 것을 승인했다.

가톨릭사전에는 “성서에는 원죄 없는 잉태 교리에 대한 명시적인 표현이 없다”, “초대교회의 교부들은 마리아를 거룩하다고 여겼으나 죄의 흔적이 없다고 보지는 않았다”고 인정하면서 “17세기에 이르러 교리로 규정해달라는 신자들의 요청에도 거절하다가 1854년 교황 피우스(비오) 9세(Pius IX)가 주교들과 신학자들의 협의를 거처 공식 교리로 선포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1950년, 교황 피우스(비오) 12세(Pius XII)는 마리아가 죽지 않고 승천했다는 것을 신조로 선언했다. 이른바 ‘몽소승천(蒙召昇天, the Assumption of the Virgin)’, 또는 ‘성모승천’ 교리다. ‘몽소승천’이란 ‘부르심을 받은 승천’이라는 뜻이다. 8월 15일이 대축일이다. 이 신앙은 4~5세기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가톨릭은 예수의 승천과 구별하여 “예수는 하나님이시므로 스스로 승천하신 것이고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부르심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외에도 마리아에 대한 교리와 호칭으로 ‘교회의 어머니’, ‘천상의 모후’가 있다. ‘교회의 어머니’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기간 중에 교황 파울루스(바오로) 6세(Paulus VI)가 공식적으로 마리아에게 붙인 호칭이다. 가톨릭은 이 교리에 대해 “믿음과 순명으로 성부의 아들을 세상에 낳아준 마리아는 신자들이 교회의 머리인 그리스도의 지체들로 태어나도록 모성애로 협력한다”며 “그리스도의 지체들의 어머니이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어머니라 불린다.”고 설명한다. ‘천상의 모후(하늘의 여왕)’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붙여진 호칭이다.

이탈리아 아시시에 있는 성프란치스코성당의 마리아상.

성경 속 ‘마리아’는 가톨릭뿐 아니라 일반적으로도 많이 불린다. ‘아베 마리아(Ave Maria)’는 마리아에게 하는 기도문을 일컫는 말이다. ‘아베(Ave)’는 ‘안녕하세요’라는 뜻의 라틴어다. ‘아베 마리아’는 슈베르트, 구노, 카치니 등의 곡명으로도 사용되었다.

‘산타 마리아(Santa Maria)’도 마리아를 지칭하는 말이다. ‘산타(Santa)’는 ‘거룩한, 성스러운’이라는 뜻이다. 마리아를 노골적으로 숭배하는 이 표현은 전 세계 가톨릭교회 예배당과 도시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노트르담의 꼽추”로 더 유명한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Notre-Dame de Paris)》의 배경이 된 덕택에 명소로 자리매김한 경우인데, 노트르담도 마리아를 숭배하는 표현이다. 프랑스어 ‘Notre Dame(노트르 담)’은 ‘우리들의 귀부인(Our Lady)’이라는 의미다. 이탈리아어인 ‘madonna(마돈나)’도 마리아를 지칭하는 말이다. ‘Mia Donna’의 준말로 ‘나의 부인’이라는 뜻이다.

마리아 숭배의 기원과 성경적 관점

일부 학자들은 마리아 숭배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아르테미스(아데미, 로마 신화의 다이애나) 숭배 사상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한다. 가톨릭의 마리아 숭배가 본격화된 것은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공언한 431년 에페수스 공의회(에베소 공의회) 이후다. 공교롭게도 에베소는 사도 바울이 전도하던 중 아르테미스(아데미)를 숭배하는 자들로 인해 소동이 벌어졌던 곳이다.

에페수스 공의회를 개최하기 전, 가톨릭 내부에서는 그리스도의 신격과 더불어 마리아의 호칭에 대한 이견으로 논란에 휩싸여 있었다. 안티오키아학파 출신의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네스토리우스(Nestorius)는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칭하는 것을 반대했다. 이로 인해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키릴로스(Kyrillos)와 충돌하게 되었고 네스토리우스는 황제에게 공의회 개최를 요청했다. 그러나 키릴로스는 네스토리우스의 견해를 따르는 주교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공의회를 시작하여 마리아 숭배를 공식화하고 이를 부정한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규정해 파문했다.

가톨릭의 교리는 해설 자체도 난해하고 모호한 면이 적지 않다. 마리아론은 성경적 관점에 부합하지 않고, 기독교 신앙의 근간인 삼위일체론에도 모순점이 발견된다. 성경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라고 증언하고 있다(이사야 9:6, 빌립보서 2:5, 로마서 9:5, 요한복음 10:30, 14:9). 하나님은 육체를 입기 위해 수많은 유대 여인 중 마리아를 선택했던 것뿐이다(이사야 7:14, 마태복음 1:16~25).

예수님이 마리아를 대하는 모습을 살펴보면 마리아는 일반인들과 동일한 피조물이자 구원의 대상에 불과하다. 예수님이 마리아를 ‘성모’로 간주하거나 동격으로 본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예수님은 오히려 마리아를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누가복음 2:48~49, 요한복음 2:4, 마태복음 12:46~50). 예수님에게 마리아는 신적 권위를 가진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의 마리아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에서 마리아에 대한 공경심은 예수님보다 더 우세하다. 예수님은 대개 마리아의 품에 안겨 있는 아기로 표현된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상을 숭배하는 문화는 고대 원시종교의 여신 숭배 풍습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기원은 니므롯의 아내 세미라미스(Semiramis)가 자신과 아들 담무스(Tammuz)를 숭배하도록 강요했던 고대 바벨론의 종교에서 시작되었다. 바벨론 종교의 영향으로 여신, 모자(母子) 숭배 문화는 고대 여러 국가들에 전승되었다. 가나안의 아스다롯(Ashtoreth), 이집트의 이시스(Isis)와 호루스(Horus), 네르투스(Nerthus)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게르만족의 헤르타(Hertha 또는 Ertha), 인도의 인드라니(Indrani) 또는 데바키(Devaki)와 크리슈나(Krishna), 중국의 싱무(聖母, Shingmoo), 그리스(헬라)에서는 아프로디테(Aphrodite), 에페수스(에베소)에서는 아르테미스(Artemis, 성경상의 아데미), 로마에서는 비너스(Venus)라 불렸다.

이러한 이교적 풍습은 그 맥을 이어 기독교에도 흡수되었다. 마리아를 신적 존재로 승화시킨 마리아상이 등장한 것이다. 그 비성경적 행위를 명분화하기 위해 체계화한 작업의 결과물이 가톨릭 고유의 신학인 마리아론이라 할 수 있다.

가톨릭에서는 마리아를 성부의 딸, 성자의 어머니, 성령의 짝이라고 가르친다. 이는 기독교의 핵심 진리인 삼위일체론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거나 부인하는 논리다. 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근본은 한 분’이라는 뜻으로 아버지 하나님을 가리킨다. 성삼위일체의 관점으로 보면 마리아론은 심각한 모순을 가져온다. 한 분 아버지 하나님의 ‘딸’이면서 ‘어머니’이기도 하며 또한 짝이 된다는 것은 성립할 수 없는 논리다. 육신적 측면에서 ‘예수님을 낳은 어머니’라고 해서 신적 영역을 포함해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보는 것은 육적 세계의 관계를 영적 세계로 연장하는 그릇된 논리인 것이다.

누가복음 기자는 마리아가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가 이 여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던 일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누가복음 1:46~49). 마리아는 숭배를 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구원자인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 자료>